정치적 풍경
(Political Landscape) 


5 July - 17 July 2011

Opening_6pm. 5 J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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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환 (李庸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교수

한국사진학회 회장

삼성 디지털 이미징 자문위원

울산포토페스티발 조직위원장

2010 대구사진비엔날레 감독

 

학력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미술학사, 1985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미술석사, 1989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영상매체전공문학석사, 1992

Ohio University, Visual Communication, Muti-Media, MA, 2002

대구카톨릭대학교예술학과문학박사과정 수료, 2007

 

Selection, <Select-25작품>,경인미술관-서울, 1983.11. 대구 목언화랑 1983.12

침묵속의 분노<33>,동아미술관-동아백화점,1995.11.8.-11.15.

잿빛하늘 그늘진 색지(50),삼성포토갤러리,1996.3.7.-1996.3. 16.

열하일기대구고토갤러리, 2000.4.19-4.24

침묵속의 분노대구고토갤러리, 2000.5.10-5.16

2002 열하일기 () (대구 갤러리 2002.3.15-21/ 광주 옵스 갤러리2002.4.2-8)

2007 열하일기 한국중국연변대학교 예술학원전시장, 2007. 12. 14~16

 

 그룹전 다수




페이크 세상을 위한 또 다른 역설

Another paradox for the fake world


영어의 make(만든다)take(취한다)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같은 말로 소통된다. 특히 현대미술에서 그림을 그린다(make a painting)와 사진을 찍는다(take a picture)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사실상 같은 개념으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예술적 실행이 전통적인 그림의 행위로서 “만든다는 것 a make”으로부터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인 “취한다는 것 a take”으로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화는 결국 전통적 재현(再現)미술이 오브제의 제시(提示)미술로 이동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말한다.

또한 take(취한다)fake(위조하다 혹은 꾸미다)도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같은 개념으로 소통된다. 왜냐하면 오늘날 예술적 행위는 레데-메이드의 포착(take) 패러다임 보다 오히려 모조(fake) 패러다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예술 행위의 또 다른 진화로서 사실상 포스트모더니즘의 모조(흉내)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모조는 엄밀히 말해 물질적인 짝퉁(시뮬레이션)이 아니라, 패러디, 판박이, 하이브리드, 픽션, 연출, 조작-합성 등 원본 없는 혹은 원본과 복사본 사이를 대충 구별하는 개념적인 모조로서 시뮬라크르(simulacre)를 말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현상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난다. 우리들의 삶은 예컨대 직장 출퇴근, 학교 수업, 집회 참석, 자동차 여행, 전화 예약, 백화점 쇼핑 등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문화적 활동에서 언제나 물리적 만남과 실행 즉 “주체에 의한 선택(take)”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은 이데올로기의 집단 통제나 오로지 생산을 위해 강요된 삶의 무게로 선택과 기회가 전혀 없었던 과거 획일화 된 삶의 방식(make)과는 분명히 다른 패러다임이다.

또한 오늘날 “주체에 의한 선택적인 삶(take)”은 슬며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패러다임 즉 “주체가 사라진 위장된 삶(fake)”으로 전이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온-라인 쇼핑, 인터넷 장터, 은행 자동이체, 브랜드화 된 상품, 아바타, 사이버 머니, 인정번호와 로그인, 트위터, -메일, 블로그 등 대부분의 삶의 방식들이 사이버화 되었고 개인적인 경험과는 무관한 일방적 선택과 미디어에 의한 맹목적 믿음이 보편화 되었다. 이는 곧 가상공간과 실제공간이 혼재되고 또 그만큼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사라지는 페이크(fake) 세상을 말한다.

이러한 페이크 세상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것은 단순히 사이버화 된 물질적인 모조물이 아니라, 집단 마녀사냥, 진짜로 둔갑된 가짜, 실제가 된 환상, 보편화된 정치인의 위선 등 오늘날 사이버 가상공간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형태의 사물화 현상(chosification)이다. 거기에는 오로지 집단의 획일적인 가치와 지나친 물질숭배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곧 디지털 무한 복제시대 기술 자본주의가 만든 일종의 정신착란으로 불가능한 유토피아의 맹목적 갈구임과 동시에 끝없는 부조리 연극이기도 하다.

여기 작가 이용환이 보여주는 도시의 위장된 풍경들 예컨대 숲으로 위장된 광화문 공사장 칸막이, 주위 나무들과 교묘히 위장된 담벼락, 정원으로 위장된 고가다리 벽화 등은 바로 이러한 페이크 세상을 암시하는 가장 분명한 지표가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풍경들은 우리가 거리를 지날 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모조물임과 동시에 페이크 개념을 암시하는 분명한 시각적인 지시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 관해 작가는 그의 노트에서 “어느 날 집 앞 지하철 공사장의 가림막이 풍경사진으로 도배되었다. 도시 공간을 관통하는 긴 숲 행렬은 어느새 도시 공간 곳곳에 채워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가상공간은 현실 세계와 같이 공존하게 되었다. 난 가상공간이 실제 현실의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도시 공간 곳곳에 진짜 자연을 대신하여 가짜 자연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에 주목하였다.“라고 언급한다.

이러한 위장된 풍경들은 언뜻 보기에 전통미술의 속임수 그림(trompe-l'oeil)처럼 두 장면이 병치되어 드러나는 미학적인 풍경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결코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각적인 비유를 통한 개념적인 제스처 다시 말해 원본과 복사본의 모조적인 관계를 암시하는 사진적 행위(acte photographique)에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실제와 모사를 교묘히 병치시켜 응시자에게 현실과 가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시각적 딜레마를 놓고 있는데, 이는 모순된 허상을 폭로하기 위해 아주 치밀히 계산된 작가의 의도적인 제스처로 볼 수 있다.

현실과 가상세계와는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주체가 사라진 위장된 일상에서 현실과 가상이 뒤섞여 있다. 거기서 실체 없는 실제, 공간 없는 공간, 실행 없는 실행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착각들은 우리에게 더 이상의 가상이 아닌 바로 현실 그 자체로 나타난다. 결국 작가가 보여주는 도시의 위장된 풍경들은 고도(Godot)를 기다리는 희망의 빛도 아닌 그렇다고 플라톤 동굴 죄수들이 보는 어둠의 절망도 아닌 빛과 어둠, 희망과 좌절, 환희와 고통이 혼재된 암울한 페이크 세상의 또 다른 역설이 된다.


중앙대학교 교수, 이경률 (사진이론가)



Posted by syogallery